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기

  영동세브란스 병원은 지난 5월 외래와 병동 리모델링을 했다. 물론 화장실도 깨끗하게 다시 만들었고, 덕분에 좀 더 쾌적한 환경에서 중요한 일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. 리모델링을 하면서 손을 씻는 곳도 같이 바뀌었는데, 움직임 감시 장치가 달리 수도꼭지와 손 소독제가 나오는 꼭지도 설치되었다. 그래서 손을 씻을 때 남들이 쓰던 비누가 아닌 손 소독제로 손을 씻을 수 있고, 물이 튀긴 수도 꼭지를 만지지 않아도 된다. 그런데 한가지 문제가 있다. 손을 씻은 뒤 물기를 닦기 위한 휴지 상자가 벽에 걸려 있는데, 이 휴지를 사용하려면  상자 옆에 있는 손잡이를 두세차례 잡아 당겨야 깨끗한 휴지가 나온다. 손 소독제까지 써가면서 깨끗하게 손을 씻고 다시 그 휴지 손잡이를 잡아야 하는 것이다. 물론 이 손잡이에는 다른 사람의 물기가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 물기안에 온갓 세균이 있을 것이다. 즉, 손을 씻는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.
  어느 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화장실에서 중요한 일을 해결하고 나왔다. 외래가 끝난 시간이어서인지 화장실에는 사람이 없었다. 나는 손을 씻고 있었는데 어느 외국인 한 명이 들어와 그의 중요한 일을 해결하고는 내 옆에 서서 손을 씻으려 하였다.  그는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, 평소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벽에 걸린 휴지 상자 손잡이를 두번 잡아 당겼다. 그리고는 손 소독제와 물로 손을 씻고 미리 뽑은 휴지에만 손을 대고 찢은 뒤 자신의 손에 남아 있는 물기를 제거하고, 물기를 빨아드린 휴지를 가볍게 휴지통에 버리고 화장실에서 나갔다. 
  참 간단한 일이었다. 쓸 휴지를 미리 뽑아놓고 손을 씻고 그 휴지로 물을 닦으면 되는 것이었는데 몇 개월 동안 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. 심지어 어떨 때는 어차피 더러워질 손가락을 생각하며 아예 손을 씻지 않을 때도 있었다. 분명 그 외국인도 언젠가는 나와 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. 그러다가 그는 자신의 방법을 생각해 냈고 그 뒤로는 그렇게 행동했을 것이다. 당연히 손을 씻고 물기를 닦는다는 생각때문에 난 휴지를 미리 빼놓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.  세상을 살면서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, 정말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 필요한 세상인 것 같다. 세상은 항상 그런 사람들에게는 살기에 재미있는 곳일 것이다.
  ......
  어제 화장실에서 손 씻기 전에 휴지를 미리 뽑아 놓고 손을 씻고 있었다. 어디선가 외국인 한 명이 나타나 내 옆에서 손을 씻더니 아무런 주저함도 없이, 평소에 늘 그래왔던 것처럼 내가 미리 뽑아놓은 휴지로 손의 물기를 닦고는, 휴지통에 휴지를 버리고 화장실에서 나갔다.

세상은 참....재미나는 곳이다.

by ER_Joon | 2008/10/22 12:06 | 트랙백 | 덧글(1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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Commented by 다른 환 at 2008/11/27 16:43
포스팅 좀 자주 하슈. 나중에는 <소수들의 노래?>에 관한 리뷰를 올리면 좋을 것 같네. 이 경우에 들어맞는 얘긴지 모르겠지만, 김영하는 우리가 우리의 앎에 갇혀 있대. 나도 최근에 그 화장실에 갔는데 그 외국인이 이상한 놈인 것 같애. 아니면 비범한 놈이거나. ㅋㅋㅋ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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